남재작 |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식량위기 대한민국』 외 X

이병한 | 미래사학자,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 외

그는 몹시 바빴다. 잘 나가고 있었고, 잘 팔리고 있었다. 유튜브에는 근래에 출연한 방송이 여럿이다. 조회수도 제법 높은 축에 속한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수시로 전화벨이 울렸다. 《조선일보》에서 농업에 대한 연재를 하고 있고, 《내일신문》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연재를 하고 있다. IPCC 제4차 보고서 승인 회의와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인증 심사에 다수 참여하면서 기후변화에 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농업과 기후위기가 만나면 자연스레 식량위기로 이어진다. 막 출간한 새 책의 제목은 『식량위기, 대한민국』이다. 인생의 여정이 한국 농업사의 진화를 상징하는 분이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 농대에 진학하여 농업을 전공한 농학자가 되었고, 농업을 전문으로 하는 공직과 공공기관을 거쳐 지금은 민간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이어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의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다 한국정밀농업연구소를 발족시킨 것이다. 그만큼 농업을 둘러싼 환경이 퍽이나 달라졌다. 기술의 발전과 소비자의 다양화로 현장과 공공 사이 민간농업의 새 시장이 열린 것이다. 코이카 농업 ODA 전문가로 라오스 등지에서 개발도상국의 식량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농촌개발사업을 기획한 적도 있다. 농업과 기술 사이 다리를 놓고 한국 농업과 세계 사이 샛길을 내면서 미래의 농업에 투자하는 새길을 개척하고 있는 남재작 소장을 만났다. 정밀하게 한국 농업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스마트커넥터였다.

이병한: 정밀농업에 대한 설명부터 청해 듣고 싶습니다. 스마트농업, 디지털농업과는 무엇이 다를까요?

남재작: 오랫동안 농업은 경험에 의존해왔습니다. 이제는 데이터에 기반한 농업이 가능해졌습니다. 관찰에서 관측으로 방법론이 달라진 것입니다. 20세기 농업기술의 특징이 기계화와 자동화였다면, 21세기의 농업기술은 지능화와 최적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덕분으로 정밀한 관측에 기반한 농업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수질관리, 토질관리, 농약관리 등 농업의 전 분야를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환경에도 더 이로울 수 있습니다. 스마트농업이나 디지털농업은 농업 앞에 붙여진 수사, 기술에 방점이 찍힌 개념입니다. 테크놀로지 중심의 접근인 것이죠. 반면에 정밀농업은 여전히 농업이 근간이고 핵심인 개념입니다. 제가 정밀농업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병한: 데이터와 관측에 기반한 정밀농업은 탄소배출 절감이나 탄소중립에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요?

남재작: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한국 전체의 에너지 소비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5퍼센트 내외입니다. 여기서도 농기계의 연료보다는 시설 원예나 저장과 유통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즉 정밀농업을 통하면 분명히 기존보다 탄소를 덜 배출할 수야 있겠지만, 기후위기를 막아낼 수 있을 만큼의 직접적인 효과를 낳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병한: 지구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은 ‘정해진 미래’라고 하셨습니다.

남재작: 저는 기후재난은 불가피한 미래하고 생각합니다. 정밀농업은 그 재난을 막고자 애쓰는 것 이상으로, 그 재난 속에서도 80억~100억 인구가 먹고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농업을 미래산업으로 진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생태적 전환보다는 디지털 전환이 더 중요합니다. 서둘러 디지털로 전환이 되어야 생태적 전환도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우리나라만 탄소중립을 한다고 해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후는 갈수록 악화될 것이고, 농사를 지으려 하는 젊은 층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필연적인 조건입니다. 청년층의 귀농·귀촌이나 유기농 확대는 언뜻 듣기에는 아름다운 주장이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되기 힘듭니다. 왜 여전히 한국 농업에서 유기농이 차지하는 비율이 5퍼센트 남짓에 그치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사십대 이하 농부의 비중은 1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저희처럼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청년 농부들은 이미 TV 방송에 다 나왔기 때문에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농담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식량 보급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밀농업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논농사는 물론이고 밭농사, 과수농사에서도 자율화와 지능화가 절실합니다. 유기농업은 노동력이 너무나 많이 필요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건비 또한 계속 올라갈 것이기에 농가의 비용 수익은 장기적으로 악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로봇이 짓는 농사가 일반화되는 것 또한 불가피한 미래입니다.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을 로봇들과 나누게 되는 것이지요. 자율 로봇은 낮에 일하면서도 충전하여 밤에도 일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유기농업에 더 근접할 수도 있습니다. 즉, 장차 농민은 농사를 짓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농민은 농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뜻하게 될 것입니다. 농업이라는 식량생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유기농업의 비율이 25퍼센트 이상까지 올라간 것도 지능형 자율로봇의 도입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농촌에서 사람은 줄고 로봇이 늘어날수록 생물다양성은 더욱 확대되는 것입니다. 관점을 전혀 달리하여 미래의 농업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병한: 기후위기 악화로 식량위기 또한 전면화되고 있습니다. 식량 안보에 대한 우려가 높습니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과 정밀농업은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요?

남재작: 식량위기도 우리나라만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오천만이 먹고살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땅에만 갇혀 있는 생각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자급자족은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식량을 생산하는 미래농업의 운영체계를 해외에 보급하는 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밀농업에 ICT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농산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래형 농업이라는 시스템을 수출할 수는 있습니다. 한국은 제조업과 정보산업의 선진국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처럼 기계도 잘 만들고, 정보기술도 발전한 나라는 극히 드뭅니다. 한국처럼 기술인재가 많은 조건 아래서는 여타 산업과 융복합하여 농업의판을 키워야 합니다. 농업은 애그테크와 푸드테크로 진화하여 엄청난 미래산업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식량을 자급할 수 있거나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습니다.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산유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호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우크라이나와 독일, 베트남과 미얀마 정도입니다. 지리적 조건과 기후적 조건이 핵심인 것이죠. 우리나라의 입지와 기후를 고려하면 식량 자급률이 얼마나 더 높아질 수가 있을까요? 식량의 안정적인 보급을 걱정한다면 더더욱이 해외로 영토를 넓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생산량만 볼 것이 아니라, 해외와의 네트워크 속에서 식량 생산에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외국의 농업 정보를 많이 수합하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R&D 작업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래야 농업 비즈니스를 키우고, 농업기술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도래하고 있는 식량위기의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포트폴리오를 다양화, 다각화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농업의 프런티어는 개발도상국입니다. 개도국에서는 여전히 인구가 늘어날 것이고 엄청난 농업 시장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미래형 농업 인프라를 조성하는 농업 비즈니스가 갈수록 번성할 것입니다. 즉 자급의 범위를 한국으로 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도국 학생들의 유학을 유치하고 우리 농업의 관계망을 세계적으로 넓혀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고정되지 말고 운동장을 넓게 써야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한국의 농업 영토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이병한: 농업 관련 스타트업을 키우는 임팩트 투자사 크립톤의 파트너로도 참여하셨습니다.

남재작: 국내 시장은 어차피 작습니다.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반도체, 자동차부터 K-팝까지 다 세계로 나갔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한국 농업의 글로벌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월드뱅크나 아시아개발기금의 글로벌 프로젝트와 국내 농업 스타트업을 연결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점점 더 농업은 농사를 직접 짓기보다는 식량을 생산하는 서비스 산업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기술기업이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기술적 전문성에 대한 판단을 해주면서 투자사들과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인큐베이팅부터 컨설팅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줄 수도 있고요. 실제로 2017~2018년 무렵부터 농업 관련 스타트업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10년 전만 해도 농업과 스타트업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크립톤, 소풍 등 다양한 벤처 자본과 임팩트 투자사들이 농업에 관심을 키우고 있습니다. 미래의 농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농업과 전혀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돌아보면 농업은 인류 최초의 스타트업이었다. 수렵과 채집으로 자연의 결실을 간헐적으로 취하던 생활을 그치고, 자연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개입하면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을 꾀한 것이 바로 농업이었다. 즉, 농업은 시초부터 무위자연을 거스르는 호모사피엔스의 작위적이고도 모험적인 벤처산업이었던 것이다. 물론 농업의 출발에도 자연은 배경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질학에서 말하는 홀로세, 지구의 기후가 농업에 최적화된 예외적인 환경이 되어주었고, 그래서 작물을 배양하고 가축을 키우며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는 지배적인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그 최초의 창업을 가능케 했던 기후가 바뀌고 있다. 기왕의 농업을 고수해서는 2050년 100억 인류가 먹고살기가 난망하다는 것이 농업과학자로서 남재작 소장의 정밀한 소견이었다. 다시금 또 한번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 또한 지난 백년, 산업혁명기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농업에 부작용이 많았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천년처럼 소농 중심의 유기농으로는 생물다양성도 확보할 수가 없으며, 식량 안정화는 더더욱 달성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설득한다. 그 합의 아래에서만이 미래의 새 농업이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말 그대로 뉴노멀, 뉴플래닛의 새로운 농업으로 리셋하고 리스타트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근본주의적 원론의 설파가 아니다. 엄밀한 데이터와 주밀한 관측이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입론이다.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그의 소견과 소신을 따르는 쪽에 서겠다. 인류가 여기까지 온 것 또한 그러한 탐구와 탐사와 탐험에 근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후가 변한다. 대양부터 대기까지 지구가 온통 바뀐다. 대지 위의 인간이 일군 최초의 창조산업 농업 또한 다시 크게, 깊이, 널리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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